이번 호에서는 한양대학교 국제대학 노태우 교수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ESG 공시가 강화되는 환경에서 기업들의 청렴경영에 대한 고견을 들어보고자 한다.
ESG 공시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기업에게 주어진 기본 의무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단순히 정보를 공시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내부와 외부 이해관계자를 어떻게 조율하고, 그 속에서 얼마나 설득력 있는 신뢰를 확보하느냐가 본질입니다. 결국 청렴과 윤리경영이 우선적으로 내재화될 때, 공시의 투명성이 진정성을 얻게 되고, 모든 이해관계자와의 관계에서 기업은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최근 현대자동차는 이사회 구성의 다양성을 강화하고, 역량 구성표를 공개함으로써 선진적인 거버넌스 체계 구축에 나섰습니다. 동시에 임직원의 윤리의식 제고와 공정거래 문화 확산을 통해 고객·주주·협력사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윤리헌장 제정과 준법지원 시스템의 도입은 윤리경영을 조직문화에 뿌리내리게 하는 장치이며, 이를 투명하게 공시함으로써 대외적 신뢰를 끌어올리고 있습니다.1) 한화그룹 역시 같은 흐름 속에서 기업지배구조 강화를 ESG 경영의 핵심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김동관 대표가 공식적으로 “정도경영과 나눔의 가치 실천”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한화는 ‘지배구조헌장’을 제정해 이사회와 감사위원회의 권한을 명확히 하고, 주주·협력사·임직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권리를 확장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앞으로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첫걸음일 것입니다.2)
해외 사례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독일 지멘스(Siemens)는 과거 뇌물 스캔들3)을 계기로 윤리경영을 재정립했습니다. “Ethics and governance ensure that Siemens operates with integrity and transparency”이라는 철학을 내세운 지멘스는 ESG 공시에서 내부 통제 시스템과 윤리경영 실천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글로벌 투자자와 기관의 높은 신뢰를 되찾으며 윤리경영의 국제적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4)
결국 ESG 공시가 진정성 있는 정보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청렴·윤리경영이 핵심적으로 내재화되어야 합니다. 단순한 데이터만으로는 이해관계자를 “설득”할 수 없으며, 기업이 확보해야 할 것은 투명성과 함께 체화된 윤리문화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CEO와 이사회의 실천 의지, 제도적 장치의 내재화, 그리고 이를 담보하는 공시의 투명성이야말로 ESG 경쟁력의 최종적 결정 요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ESG 공시는 기업의 경쟁력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창으로 기능하며, 그 창을 통해 드러나는 진정성이 있을 때 비로소 기업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로부터 지속적인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결국 “설득을 통해 얻은 신뢰(trust earned, not bought)”만큼 값진 자산은 없으며, 이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기업의 가장 큰 경쟁력입니다. 그리고 그 신뢰를 유지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을 것입니다.
“It takes 20 years to build a reputation and five minutes to ruin it. If you think about that, you’ll do things differently”
Warren Buffet5)
ESG 공시가 강화되면서 단순히 데이터를 수집하고 나열하는 수준을 넘어, 그 데이터가 투명하게 산출되고 신뢰성 있게 관리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한 평가 요소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부패방지, 이해충돌 관리, 내부통제 제도는 단순한 ‘보조 장치’가 아니라 ESG 데이터 공시 체계의 핵심 인프라로 작동합니다. 이 제도들이 뒷받침될 때만이 공시 정보는 이해관계자들에게 진정성을 갖춘 신뢰 자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가 준법경영위원회를 설치하여 글로벌 기업 수준의 컴플라이언스 체계를 도입한 바 있습니다.6) 임직원 행동강령을 강화하고, 내부 제보 시스템을 고도화하며, 정기적으로 준법 리스크를 점검함으로써 공시 데이터의 왜곡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려는 노력이 돋보입니다. LG그룹 또한 ‘컴플라이언스위원회’를 통해 내부통제 체계를 강화하고, 이해충돌 방지를 위한 규정을 세분화하여 ESG 공시에 반영하고 있습니다. 최근엔 글로벌 인증기관 BSI (British Standards Institution)로부터 준법경영시스템(Compliance Management System)에 대한 ‘ISO37301’ 인증을 획득하였습니다.7) 이러한 제도는 단순히 내부 리스크를 관리하는 차원을 넘어, 공시 체계의 투명성을 높이고 투자자 신뢰를 확보하는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해외 사례로는 미국 GE (General Electric)의 윤리와 준법(Ethics and Compliance) 보고서를 살펴보면 내부통제 제도가 자주 언급됩니다. GE는 ‘Integrity Policy’를 통해 리더와 임직원이 준수해야 할 윤리·부패방지 기준을 각각 행동강령(Code of conduct)으로 명확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임직원에게는 이해, 인식, 실천(be knowledgeable, aware, and committed)을 요구하고, 리더들에게는 예방, 발견, 조치(prevent, detect, and respond)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Rolls-Royce는 과거 부패 사건을 계기로 지역별 윤리 자문위원(Local Ethics Advisor) 제도를 도입하여 글로벌 내부통제 플랫폼을 구축하고, ESG 공시 데이터에 대한 독립적 검증 절차를 강화했습니다.8) 이러한 사례들은 내부통제가 ESG 공시의 신뢰성을 담보하는 필수 조건임을 잘 보여줍니다.
결국 ESG 공시에서 강조되는 것은 단순한 ‘데이터 자체’가 아니라, 그 데이터를 지탱하는 제도적 장치와 운영 과정입니다. 부패방지와 내부통제 시스템이 견고할수록 공시는 투명성과 진정성을 확보할 수 있으며, 이해관계자는 이를 통해 기업의 책임성과 신뢰도를 평가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투명성은 제도에서 나오고, 신뢰는 그 투명성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얻어진다(Transparency comes from systems; trust comes from practice)”는 점을 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ESG 글로벌 표준의 본격화는 기업에게 단순한 ‘보고 의무’가 아니라, 국제적 신뢰 경쟁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특히 OECD, IFRS 재단, ISSB(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 등에서 제시하는 글로벌 가이드라인은 ESG 데이터뿐 아니라 윤리적 리스크 관리 체계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내재화했는지를 평가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따라서 기업은 청렴·윤리경영을 단순한 도덕적 선택이 아니라 리스크 관리와 글로벌 투자 유치의 필수 요건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국내 기업의 경우, 앞으로는 내부 통제 시스템을 글로벌 수준으로 정비하는 동시에 이사회 차원의 윤리·준법 감독 기능을 한층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독립적인 ESG 위원회 혹은 윤리위원회를 설치해 리스크 관리 체계를 정례적으로 점검하고, 이해관계자 의견을 반영하는 프로세스를 제도화해야 합니다. 또한 ISO 37001(부패방지 경영시스템), ISO 37301(준법경영시스템) 등 국제 인증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내부 검증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국내 사례로는 효성과 HS효성을 들 수 있습니다. 효성은 윤리강령과 실천지침을 제정하고, ESG경영추진위원회와 준법지원팀을 중심으로 내부통제·부패방지 제도를 강화해왔습니다. 특히 HS효성은 출범 1년 만에 “안전이 곧 경쟁력”이라는 경영철학을 앞세워, 전 사업장에 안전보건팀과 CEO 직속 SHE 위원회(safety, health, environment)를 운영하며 글로벌 수준의 안전문화를 정착시키고 있습니다.9) 이는 최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과 건설현장 사망사고의 사회적 파장이 커지고 있는 국내 현실에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SK E&S, SK가스, SK하이닉스 SK그룹 계열사들도 SHE 위원회를 설립하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법적 준수 차원을 넘어, 안전을 기업의 핵심 가치로 내재화함으로써 ESG 공시의 진정성과 이해관계자의 신뢰를 확보하고 있는 것입니다.
해외 ESG 공시의 선도적인 사례로 독일의 화학 기업 BASF와 일본의 자동차 제조사 Toyota는 단순한 정량적 성과 지표를 넘어선 심층적인 윤리 경영 및 공급망 투명성을 통해 시장에서 독보적인 신뢰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BASF의 경우, 전 세계 사업장에 강력한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과 익명성을 보장하는 내부 제보 시스템인 'Compliance Hotline'을 운영하며 임직원뿐만 아니라 협력업체까지 포괄하는 부패 방지 및 윤리 규범 준수를 철저히 관리합니다.10) 한편, Toyota는 광범위하고 복잡한 글로벌 공급망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관리하며 ESG 투명성을 높입니다. 특히, 인권 존중, 노동 조건, 환경 관리 등을 포함하는 '공급업체 행동 강령 (Supplier Sustainability)'을 통해 협력업체에도 OECD 가이드라인 수준의 윤리 기준을 요구하고, 자율적인 리스크 관리 시스템 구축을 독려합니다.11)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공급망 회복력 강화의 교훈을 ESG 경영에 통합한 것처럼, Toyota는 협력업체와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위기 관리 역량을 입증하며, 이해관계자들의 신뢰를 얻고 있습니다. 이처럼 두 기업은 단순히 규제에 따른 의무를 넘어, 내부 통제와 공급망 관리의 취약점을 솔직하게 공개하고 개선 노력을 투명하게 보여줌으로써,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결국 향후 과제는 단순한 규제 준수를 넘어,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선제적 리스크 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데 있습니다. 청렴·윤리경영은 글로벌 표준과 연결될 때 비로소 ESG 경쟁력의 핵심으로 기능하며, 이는 투자자와 고객, 사회 전반에 장기적 신뢰를 제공합니다. 다시 말해, “규제는 따라가는 것이지만, 신뢰는 선제적으로 구축해야 한다(Compliance follows rules; trust requires foresight)”는 점을 기업 리더십이 깊이 인식하는 것이 전략적 과제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