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돋보기
기업 조직의 이해상충과 기업 환경의 이해충돌

개인의 이익과 조직을 위한 공적 의무가 상충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이해충돌은 오너와 전문경영인이 분리된 기업에서는 구조적으로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들 기업에서 이해충돌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의 마련은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또한, 기업 활동이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을 주고받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사회경제 환경과의 이해충돌은 기업 자체의 거버넌스 재구성만으로는 해결하는데 한계가 있다. 사회 전체의 공동선이라는 시각에서 기업의 경영과 사적 소유의 권리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이며, 기업 시민의 책임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으로 확대되고 있다.



구성원의 사적 이익과 공적 의무
기업에서 이해충돌은 일반적으로 기업 조직 내부에서 조직 구성원 개인의 이익과 기업 법인의 조직 이익 사이의 갈등에서 일어난다. 개인의 사적 이해관계가 기업경영의 실천과 혼합되거나, 조직 구성원의 사익 추구가 기업 내의 지위나 역할과 결합되면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일이 흔히 목격된다. 하지만, 개인의 사익과 공적 책무의 이해상충이 개인의 일탈이나 조직 내의 일시적인 혼란으로 그친다고 해서 그 결과의 파장이나 파생되는 비용이 사소할 수 없다. 우리 사회에 이해충돌 이슈를 다시 한번 촉발한 LH 사태나, 미공개 주식정보나 미공개 M&A정보를 사적 투자에 이용한 증권사 임직원의 사례 등, 개인의 금전적 또는 비물질적인 이익의 획득이 조직 전체의 이해관계를 훼손할 때 기업이 이 잠재적이거나 직접적인 이해충돌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여부가 기업의 발전과 경영의 건강성을 가늠하는 준거점이 된다.

기업 조직 내부에서 전개되는 이해충돌 현상은 예단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상황 속에서 발생하고,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회색지대로 남을 수 있다. 청년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공)기업의 채용 공정성 문제는 기득권 카르텔 속에서 항상 이해충돌의 단골 테마다. 한국의 기본적인 인간관계 문화에서 사업 관계와 사적 관계를 분명하게 구별하거나, 내 식구 감싸기 문화와 연고주의를 철저하게 배제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선물이나 접대 등을 어디까지 공개하고 승인할지 여부 또한 간단한 규범적 원칙의 잣대로만 바라보기 곤란한,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관계의 변수들이 작용한다.

기업은 회사법이 규정한 겸업금지나 자기거래금지 의무, 사내정보를 유용하는 회사기회유용금지 의무 등을 따라 내부 윤리강령을 마련하고 사례 중심의 실행 매뉴얼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 노력이 이해충돌을 해결하는 중요한 진전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실효성에 관한 논란을 피할 수 없다. 조직 구성원의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신뢰하는 예방 교육이나 자율적인 책임을 증대하려는 자가 점검과 더불어 복합적으로 현실화하고 있는 이해충돌 사건에 관한 현황들을 냉정하게 살펴보고 제도적인 대책을 사전적으로 구축할 필요가 있다.
기업 활동의 합법성과 이해관계의 정당성
기업 활동이 동반하는 이해충돌은 조직 내부에서 발생하는 사익과 공적 의무 사이의 이해상충에서 끝나지 않고, 기업경영을 둘러싼 사회적인 논쟁으로 비화해서 나타나고 있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 위에서 행해지는 기업의 로비행위와 경제적인 압력행사의 부도덕한 행태는 기업의 영리추구활동의 위법성에 관한 비난을 확산시키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점차 전면화하고 있는 기업의 사적이익 추구행위나 주주가치를 절대시하는 주주자본주의 공리와 지속가능한 자본주의발전을 향한 사회적 가치의 대립은 기업 활동 전반에 걸쳐 이해충돌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다.

실제로 발생한 피해 사건을 장기적인 법정 대결로 가져가 소액의 벌금만 지불하고 마무리하거나 개별 사원들의 일탈로 해소하던 기업에 대한 판결은 이윤추구의 합법성과 주주가치의 정당성에 관한 논쟁을 불러왔다. 2021년 3월 피해자들의 오랜 법적 투쟁 끝에 프랑스 대법원은 제약회사 세르비어(Servier)의 유죄를 확정했다. 하지만 세르비어는 그동안 광범위한 네트워크와 자원을 동원하여 당뇨병 치료제 ‘메디아토르(Mediator)’의 부작용을 은폐하여 이미 막대한 수익을 획득한 뒤였다. 세르비어가 제도적 통제를 회피하고 사법적 처벌을 모면한 것에 대한 단죄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희생자들의 호소를 외면하고 기업의 불법행위에 동조한 의료제도에 관한 스캔들은 경영자와 주주의 책임성을 강화하거나 경영 전반의 감시를 통해 투명성을 확대하는 것만으로 마무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기업의 이해충돌 문제는 기업의 사적이익이 헌법적 원칙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에 더하여 정당화되고 있을 때 더욱 심각한 상황으로 이끌어져 간다. 2015년 미국의 튜링제약(Turing Pharmaceuticals)이 에이즈 치료제 ‘다라프림(Daraprim)’의 제조권과 판매권을 획득한 후 가격을 55배 인상했을 때 기업의 사적 이익추구와 일반적인 이해관계자들의 대립은 극단적으로 표출되었다. 미국 수정헌법 5조 “사유재산권은 정당한 보상 없이 공익 목적을 위하여 수용되어서는 안 된다.“를 금과옥조로 휘두르는 CEO 마크 슈크렐리에 대하여 환자의 생존권에 관한 윤리적 비난을 결집하고 사회적 가치를 여론화하는 것만으로 제도적 처벌이나 공적인 규제를 실행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1)

결국 기업의 영리활동이 일반 시민의 윤리적 감각이나 법적 상식에 배치될 때, 기업 활동의 합법성과 이해관계의 정당성에 관한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기업과 기업 외부 환경 사이의 이해충돌을 규제하는 규범을 마련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의 구축이 점차 긴급하게 요청되는 것이다. 기업의 경영활동에 수반하는 이해충돌을 근본적으로 문제화하는 것은 기업 거버넌스의 개선을 넘어 주주자본주의의 개혁으로 전화되어야만 한다.
  • 마크 슈크렐리는 여론 비판에 아랑곳없이 의회청문회에 출석해서도 자본주의 시장원칙을 조롱조로 설파하거나 인터뷰를 통해 사적 이윤추구의 헌법적 가치를 웅변적으로 찬양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사법적 심판을 받은 것은 제약회사 CEO로 취임하기 이전 투자은행 재직 시에 행한 금융사기사건에서였다. 그는 7년형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이지만 ‘다라프림’은 여전히 750불이라는 인상된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